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쫒는 자의 변辨

-생각을 쫓는 눈-

 

마음 방 한 켠에 쏜살같이 정수리를 날아 지나가던 수상한 공(空)이라는 놈을 붙잡아 놓았다.

눈 깜빡 할 새 세상의 곳곳 어딘가로 스며들어 제 몸은 감춰 버리고 소문만을 부풀리는 가공할 만한 녀석이다. 몇날 며칠을 차가운 골방에 자루 채 꾸깃꾸깃 처박아둔 그 녀석이 먼지 틈새로 뭉게구름이 피어나듯 어떤 기류와 충돌하여 부지불식 결에 부풀어 올라 미확인 비행체처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녀석은 태생이 좀체 길들여지지 않는 외계에서 온 뿔난 혹성 같아서 불현듯 난장을 치고 돌개바람 일듯 어디론가 달음질치기 일쑤다.

도무지 내 눈에는 허구헌날 부랑자마냥 개념상실에다가 천진난만 오만방자해서 천태만상의 우(遇)를 자초하니 속수무책인 골칫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동자가 고요히 숨을 고르고 녀석을 거듭 쫓는 까닭은, 난데없이 달려오는 그 허술한 품새가 대담하고 난감하고 거침이 없으나 다시 空으로 사라져가는 담담한 결이 달빛에 몸을 실은 하얀 나비 춤사위 덧없는 탄식처럼 가벼워서 가당치 않게 아름다운 때문이다. 그 날의 그 장면부터였었던 것 같다. 나는 어느덧 메마른 해갈을 기다리는 모래 사막처럼 갈라진 빈 화면에 생각이라는 비호구름 같은 떠돌이 본체를 붉고 푸른 물감으로 흩고 헤쳐 뿌려대며 충동하고 쫓고 있다.

 

세상의 한 낮은 쓸데없이 들끓고 광채나고 무겁고, 이미 생각이란 녀석은 결박 당해서 박제된 무기력한 식물종처럼 메마른 창백한 뿌리를 땅에 내려 달콤한 수맥에 탐닉되어 고삐 풀린 제 버거운 하얀 날개죽지를 꺽어 버렸다. 

 

나의 헐벗은 생각이 날아가고 침략하는 그 곳은 우주의 한 송이 꽃처럼 소립자처럼 충만하게 존재하여, 광학 현미경을 들여대고 초음파로 잡아내도 쪼개고 다시 쪼개어도 만져지지 않는 오직 감지되는 어떤 감각의 아름다움의 풍경(風景)이며 일종의 금단의 땅, 잃어버린 제국,중력에 지배당하는 질량을 가지고는 볼 수도 만져 볼 수 없는 헐벗어서 더욱 아름다운 광활한 대지인 것이다.

 

“사람의 눈은 세 개다.

영혼과 감각을 깨워 흔들어 대는 

감춰지고 퇴화된 거대한 푸른빛의 눈.

순간에 반짝여진 눈동자가 거칠고 생생한 생각을 쫓기 시작한다.

그 꼴(形)이 참 희한하다.

계속해서 꼴을 버리고 바꾸고 변신 중이다.

무엇을 집어 삼켜서 자라나는 꼴이고 무엇을 품어 놓은 꼴일까?

아름다움은 눈동자에 장미 가시처럼 박혀서 심장을 붉고 붉게 몰락시키는 한 순간의 영원함, 그 한 찰나에 있다.

나의 눈은 지금 한 뼘 사람의 뇌와 심장으로 꾸는 아름다운 색(色)의 꿈을 쫓는 꿈을 꾸고 있다.”

 

- 쫒는 자의 변辨.  2015년의 여름날 작업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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