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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으로 남은 마음의 단서

이정은展4.21~5.19 갤러리비원

 

박영택・미술평론가, 경기대 교수

색채의 바다에 선들이 유영하는 듯하다. 끄적거린 잔주름 같은 선들이 해초처럼, 풀처럼 혹은 바람처럼, 또는 파문처럼 흔들리고 떨어 댄다. 그 선들은 특별한 목적을 지니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특정 대상을 묘사하거나 구체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몇 겹의 레이어를 지닌 표면에서 출몰하는 이 선들은 낙서 같기도 하고 상형문자나 선사시대의 부호같기도 한 자취이다. 그것들이 수수께끼와 영감, 신비로움을 안긴다. 판독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것들은 그것 스스로 기이한 힘을 지닌 이미지가 된다. 

이정은의 그림 속의 선들은 미지의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이 변종은 정형화된 형태를 갖지 않고 가변적이며 생성적이다. 선 스스로가 독립된 생명체로서 화면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번식한다. 이 자유로운 선은 작가의 마음과 생각의 잔해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림 그리는 순간 그 자체의 시간의 증거다. 또한 기의 없는 기표이다. 오로지 자유롭고 변화무쌍하게 변화해 가는 선의 진화가 고스란히 그림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 선은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건드린다. 선들이 자꾸 관자의 뇌와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바이러스처럼 파고든다. 그런가 하면 그 선들은 볼수록 어떤 대상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자유롭게 자신이 보고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어떤이는 자연 풍경과 깊은 바닷속을 떠올리게 된다. 더러는 암각화나 문자 없던 시절을 살았던 이들이 남겨놓은 간절한 제스처를 판독하고자 한다. 그것은 마치 고대인들이 남긴 벽화를 닮아 있다. 

이정은의 그림은 작가 개인의 기억에 잠재되어 있는 형태들이다. 그것들은 의도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히 자동기술적이거나 우연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뚜렷한 형태나 형상은 부재하고 흩어진 선과 점은 작가의 ‘마음 밭’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생명체이다. 그것들은 꽃씨나 포자, 세포가 되어 퍼져나간다. 그리고 생명감으로 충만한 꽃으로 피어난다. 그것은 매우 촉각적이다. 이처럼 작가의 선은 민감하고 예민하게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작가는 순간적으로 사라져가는 단상, 수시로 지워지는 마음, 명료하지 않은 기억, 그러나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어떤 것들을 다소 급박하게 옮겨 적어 놓은 것 같다. 이것은 하나의 회화이지만 동시에 문자를 닮았고 본능적인 신체적 지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손으로 그렸다기보다 몸으로 그린 것이고, 몸이라기보다는 마음과 장신적 활력이 스스로 새겨 놓은 것과도 같다.

선은 또 다른 선을 낳고 그 선이 매개가 되어또 다른 선들로 이어진다. 그렇게 선과 점이 연속적으로 화면을 채워 나간다. 선들은 저마다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오로지 선만으로도 풍성한 회화적 언어를 섬세하고 예민하게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선 못지않게 색채 또한 스스로 활력적인 생명체를 닮아 있다. 그 색들은 작가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부합하는 정도에서 선택된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감성과 색의 감성이 가장 잘 조합되는 상태를 연출하고자 한다. 선이 예민하고 감각적인 마음의 파동이라면, 색체 역시 작가의 전체적인 감성을 대변하면서 사용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선과 색의 조화와 교감을 꿈꾼다. 의미를 붙이고 의미를 캐 내는 작업에서 벗어나 있는 이정은의 그림은 이름붙일 수 없고 호명될 수 없는 것이지만 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아주 모호한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다. 사실 인생이 모호하고 저마다의 내면 또한 불안하고 알 수 없고 미지의 것처럼 회화 역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림 역시 하나의 기미이거나 단서와도 같은 것이다. 간절하기만한 몸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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