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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생성 그리고 블루

 

조진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기획1팀장)

이정은의 돋아난 우주

 

홍익대학교 회화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벽화를 공부한 후 전시보다는 우주와 작업세계에 대한 지난한 성찰의 과정을 지나 오랜 만에 전시회를 갖는 이정은 작가는 이번 아트팩토리 초대전에서 색상의 풍부함과 규사, 모래, 석회의 마티에르가 갖는 고고학적 깊이감이 어우러진 ‘돋아난 우주’의 초감각적 색色의 언씬 코스모스를 선보인다.

 

 

블루

 

이정은 작가는 존재의 근원과 세상의 시원을 표현할 때 블루를 즐겨 사용한다. 블루는 성스러운 신의 색이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에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프레스코화로 재현하면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한 신의 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블루를 사용했다. 블루는 신비한 자연의 색이기도 하다.  맑고 높은 하늘과 투명하고 깊은 바다의 색은 블루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정은의 작업은 “거대우주, 바다, 미지의 것, 숨을 쉬는, 잡을 수 없는, 카오스, 비어진, 차가운, 아주 먼, 순간의 ,냉철한, 지적인, 또 하나의 달, 지문, 도형 ... 등등에 관한 감성이다.” 작가의 작업태도와 작업방식은 명상적이고 철학적이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작가는 작업실에서 먼저 몸과 마음을 비우고 우주의 심연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리고 커다란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 놓고 “모호하고 아름다운 색과 형”을 거침없이 창조한다. 우주 만물의 존재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에게 블루는 존재와 생성을 표현하는 色이다. 흘리고 뿌리고 끍어낸 자국들이 응고되어 하나의 형상이 드러나며 그 이미지들은 形이 생겨나기 이전의 우주의 시원에 대한 명상적 사고의 표현처럼 보인다.  

 

 

존재

 

작가는 존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 속에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변화하고 소멸하는 세상의 모습들이 이데아의 절대적 진리를 기만하는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작가는 변화가 삶과 우주의 본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친숙한 이미지의 상象들은 기존의 코드화된 이미지 기호의 의미작용을 따라가기 때문에 지나간 존재의 소멸한 흔적들만을 재현할 뿐이다. 작가는 “모든 것들의 기원과 생성의 법칙”을 탐구하고 친숙한 기호의 메시지들을 해체하고 “스스로(自)의 그러함(然)을 추적”한다. 작가에게 존재는 우리에게 친숙한 형태와 이미지로 포착될 수 없으며 자연의 생성 과정 속에 ‘모호함’으로 다가올 뿐이다.  

 

 

생성

 

존재는 영원할 수 없으며 언제나 소멸한다. 그리고 모든 곳에서 생성한다. 작가는 존재의 생성을 돋아나는 우주로 표현했다. 작가가 창조하는 색과 형태는 어디에서도 본적이 없는 비 풍경의 풍경이다. 작가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우주(언씬 코스모스unseen cosmos)의 비가시적 가시성을 창조하는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의 가시적 비가시성, 즉 보이는 것에 숨겨진 본질적 속성을 찾아낸다. 작가 이정은의 눈은 허블망원경처럼 높이 있으며, 그 눈은 우주의 시원을 찾는 이성과 감성의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줌 아웃하면서 우주로 미끄러져 간다. 그 눈과 마음의 지향성이 캔버스에 남아 형과 색으로 어우러진다. 작가의 작품 이미지들은 지나간 존재의 흔적이 아니라 생성하고 돋아나는 미래의 생성하는 이미지들이다. 

 

 

블루에서 돋아난 레드

존재는 생성의 과정이다. 소멸함으로써 다시 돋아나는 우주의 생성 원리가 존재의 본질이듯 우주의 시원인 블루는 레드로 진화한다. 블루가 먼 곳의 느낌이라면 레드는 가까운 땅의 느낌이다. 레드는 땅 속 깊은 곳 마그마의 불길로 우리를 이끈다. 2012년까지 주로 블루 작업에 열중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레드의 새로운 색과 형들을 선보인다. 블루에서 돋아난 레드가 어떤 다른 색으로 진화하고, 또 그 진화한 색이 어떠한 형을 담을 것인지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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